1991
2022
12. 30.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제정 (대통령령 제13528호)
1991. 12. 30.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제정 (대통령령 제13528호)

설치령·개교 이어령 이강숙

1991년 9월 13일, 관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법(안)’ 입법예고가 실렸다. 그러나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대통령령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으로 같은 해 12월 30일에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은 그의 재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마지막 안건으로 통과했다고 한다. 설치령의 제정 이유는 “우수한 재능을 지닌 예술인으로 하여금 고도의 예술실기능력을 체계적으로 연마하게 하여 이들을 세계적인 전문예술인으로 육성함으로써 문화국가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에 문화부는 1992년 1월 28일에 설립추진단을 출범하고, 장충동 옛 국립국악고등학교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다. 설립추진단은 1993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여러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개교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처음부터 대규모로 시작하는 대신에 순차적으로 분야별 6개원을 개원하고 교수와 학생 또한 점차 충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가장 먼저 개원하는 음악원의 경우, 여러 과가 있지만 한꺼번에 교수를 선발하지 않고 소수의 교수를 임용하고 교수가 있는 과만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주요골자 가. 전문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교육부장관 관할 아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술학교"라 한다)를 설치하되, 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문화부장관에게 위탁하고, 예술학교에 전문과정(예술사과정 및 예술전문사과정)과 예술실기연수과정을 두도록 함.”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한예종 설립 논의가 시작될 때 문화계 전반적으로 예술교육이 이래선 안 된다는 의견과 주장이 많았어요. 예술교육에서 교육학자들이 거론하는 이론이라고 할까, 일원론, 이원론, 이런 말들이 나왔어요. 그런 걸로 내가 글도 쓰고 했는데, 일원론이라고 하는게 뭔가 하면 교육의 원리 하나로 모든 교육을 행해야 한다는 식의 이론이에요. 그 이론과 원리 하나로만 예술교육을 하면 안 된다는 반론으로 이원론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뭔가 하면 음악교육의 경우는 음악의 원리를 모르고 교육의 원리 하나에 입각해서 예술 교육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음악 모르는 사람이 음악교육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음악만 한다고 해서 교육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교육의 원리를 알아야 되는 건 사실이지만, 교육의 원리와 음악의 원리, 미술의 원리 이런 식으로 예술의 원리를 앎과 동시에 교육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두 가지를 알아서 하는 것이 예술 교육을 하는 건데, 지금도 그런게 있어요. 우리 학교가 생겨서 그게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완화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어떤 교육이던 교육의 원리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예술 교육을 규제하고 통제하고 묶고 그랬어요.” 이강숙 초대 총장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20주년 기념 백서, 2012
“예술교육은 예술교육다워 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교육 제도라는 건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때 이어령 장관이 문화부 장관에 있으면서 (...) 교육의 원리도 중요하지만 예술의 원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꺼내든 거지요. 교육법은 상위개념이지만 고등예술교육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설치령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교육의 원리가 이원론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실현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죠.” 이강숙 초대 총장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20주년 기념 백서, 2012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통과 배경

이어령 문화부 장관에 따르면, 예술학교 설립 계획은 장관 자신이 목수가 되어 광야에 세우는 ‘문화의 집’ 네 기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교육 기관 설립은 교육부의 소관이었기 때문에 문화부 산하의 예술교육 기관을 만드는 시도는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어령 장관은 윤형섭 당시 교육부 장관을 설득하여 안건을 추진했으나 교육부가 문화부 안건에 힘을 실어준 결정에 대해 거센 반발이 일었다. 농림부나 동력자원부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 역시 해당 부처 산하 인재 양성 교육기관 설치를 시도했지만 매번 교육의 반대에 부딪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령 장관은 회의에서 예술학교 설립 목적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고 회의 종료와 함께 반대 의사 없는 극적 타결을 이루어냈다.

“예술영재를 위한 특수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특권이나 우월한 지위를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천부의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장애인 같은 고난의 핸디캡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 존재라는 것이지요. 나는 지금 앞을 보지 못하거나 말을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서 맹아학교, 농아학교를 만들어달라는 것과 같은 절박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일생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만약 하늘이 주신 음악의 재능을 살리지 못했더라면 과연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국무회의 중 이어령 장관의 5분 연설 내용,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인터뷰, 주간조선, 2016. 9. 9.
“동자부[동력자원부]는 안 되고 왜 문화부는 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좋습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여기 파라고 하면 석유 나오고, 저기 파라고 하면 가스가 터져나온다면, 에너지 특수학교를 만드십시오. 농림부는 안 되고 왜 문화부는 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반문하겠습니다. 만약 기저귀 찬 아이가 모내기에 천부적인 재주가 있어서 성인이 평생 심을 양을 하루 만에 몇 트럭씩 심는다면, 그런 아이들을 위해 농림학교를 만들어야지요. 그런데 문화부의 영역에는 그런 아이가 실제로 있다는 겁니다. 네 살 때 모차르트처럼 절대음감을 지닌 아이들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아이들에게 일반 교육을 실시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국무회의 중 이어령 장관의 5분 연설 내용,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인터뷰, 주간조선, 2016. 9. 9.
“‘있다’는 존재론이고, ‘되다’는 생성론이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이미 ‘있는’ 거야. 다이아몬드도, 포크도, 이 펜도 이미 ‘있는’ 것이지. 존재론이야. 하지만 어린아이는 어때요? 모든 것이 ‘되는’ 생성론이지. 출발점에 있으니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존재거든.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어때? ‘있다’의 교육이지. 틀 하나 만들어놓고 붕어빵을 뽑아내. 아인슈타인 봐요. 학교 성적 엉망이었다가 스위스 바젤에 가서 좋은 예비학교에서 좋은 교사를 만나 처음으로 인정받잖아.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비로소 무언가가 ‘되기’ 시작하잖아. 그게 진짜 교육이지.”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인터뷰, 주간조선, 2016. 9. 9.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법안(문화부공고 제105호), 1991. 9. 13., 국가기록원 대한민국정부 관보 제11919호에 실린 문화부 고시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법(안) 입법예고. 교육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1991년 12월 10일에 대통령령인 설치령으로 바뀌어 제정하기에 이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제정(안) 보고, 1991. 11., 한국예술종합학교 기록관 문화부 내부결재 문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제정 과정 중의 문서로, 입법예고를 생략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추진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인 이어령 장관의 서명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위원 기념촬영, 1992. 11. 2., 한국예술종합학교 기록관,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지털 예술정보 서비스(DAIS) (앞 줄 왼쪽부터) 기획과 김성익, 총무과 김문호 사무관, 김전배 사무국장, 이강숙 교장, 이서해 총무과장, 최천식 기획과장, 김충 교무과장, 총무과 정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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