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문화예술계의 여론 수렴, 전문가 연구 등을 통해 음악원에 이어 두 번째 설립 대상으로 연극원이 결정되었다. 1993년 6월 2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음악원에 이어 연기, 연출, 극작, 무대미술 4개과 85명 규모의 연극원을 1994년에 개원할 것임을 발표했다. 연극원을 두 번째로 개원하는 이유로는 배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배우 양성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과 현재의 대학교육은 전문 연기자를 양성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점, 연기는 언어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외국 유학을 통한 교육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혔다. 또,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연극과 음악의 결합은 연기자들의 성악 훈련이나 성악가들의 연기 훈련이 요구되기 때문에 앞서 개원한 음악원과 그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1993년 6월 1일에 공식적으로 자문위원회가 확정되어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연극원 설립에 대한 기본 계획 및 학과 편제, 신입생 모집 전형이 결정되었다. 이에 연기과, 연출과, 극작·이론과, 무대미술과 4개 학과는 1993년 12월 13일부터 29일까지 3회에 걸친 입학시험을 통해 57명을 선발했다. 입학정원은 85명이었으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연기과 33명, 연출과 4명, 극작과 10명, 무대미술과 9명이 선발되었다. 최종 합격자 중에는 기졸업자가 36명으로, 대학교 재학생을 비롯하여 기성극단의 배우 등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극작과는 극작 전공과 이론 전공으로 나누어 학생을 선발했는데, 이론 전공은 1998년부터 연극이론과로 독립, 1999년에 연극학과로 학과명을 변경하였다. 현재 연극원은 극작과, 무대미술과, 연기과, 연출과, 연극학과 5개 학과로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공식적인 개원에 앞서 1993년 11월 9일에는 연극원 설립 자문위원인 김우옥 교수가 초대 연극원장으로 내정되었다. 김우옥 교수는 동랑레퍼터리극단의 대표로 마이클 커비의 <내.몸.빛>, 오태석의 <자전거>, 윤대성의 <방황하는 별들> 등을 연출했다. 1985년 국내 최초의 청소년 전문 극단인 동랑청소년극단을 창단한 아동극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는 아시테지(ASSITEJ,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 본부 이사장에 이어 아시테지 세계 본부 이사를 역임했고, 1994년 3월 4일 초대 연극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94년 2월 21일, 문화체육부 및 그 소속기관의 직제가 개정됨에 따라 연극원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으며, 같은 해 3월 3일에 토월극장에서 연극원 개원식이 열렸다. 연극계 및 기타 문화예술계 인사, 문화체육부 관계자, 재학생 및 학부형 등 650여 명이 참석하였다.
연극원 개원 자문위원회
임영웅(한국연극협회 이사장), 김정옥(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원장),
박웅(한국배우협회 회장), 윤호진(한국연출가협회 회장),
한상철(한국연극평론가 협회 회장), 이병복(한국무대미술가협회 회장),
안민수(한국연극학회 회장), 김우옥(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국제이사),
김문환(한국연극학회 부회장), 최형인(한양대학교 교수),
김윤철(세종대학교 교수), 윤정섭(MBC 미술실장, 한국TV디자이너협회
회장), 정진수(성균관대학교 교수),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
김순규(문화체육부 예술진흥국장) 등
초대 교수진
연기과: 최형인
연출과: 김우옥
극작과: 김윤철, 김광림
무대미술과: 윤정섭
1993년 9월 6일, 연극원 학습장으로 장충동 국립극장 별관(구 국립국악고등학교, 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이 지정되었다. 설립 초기에 장충동 국립극장 별관을 사용하던 연극원은 1996년에 구 석관동 교사로 옮겼다. 2006년에 중극장, 소극장, 실험무대, 상자무대 등 보다 나은 시설을 갖춘 석관동캠퍼스 신축 교사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