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는 석관동캠퍼스의 공연장이자 학교의 상징적인 공간인 ‘예술극장’의 명칭을 ‘이어령예술극장’으로 변경하는 현판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어령예술극장 재개관은 학교 설립의 근간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1992. 10. 30.)을 제정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공헌과 대한민국 예술영재 양성의 뜻을 기리기 위해 추진되었다. 현판 제막식에는 유족 대표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을 비롯 김대진 총장, 처·국장단, 6개원 원장 등 학교 보직교수들과 직원, 학생 등이 참석했다. 김대진 총장은 이어령예술극장 재개관의 의미에 대해 “선각자로서 창의적 예술가 양성을 위한 한국 예술교육의 기틀을 다지고, 한국에서 세계로 예술을 발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이어령 선생님의 정신을 잇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2년 2월에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문화공보부가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를 이끈 그는 재임 중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을 통해 국내 문화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생전 문학평론가·언론인·작가·교수 등으로 활약한 그는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말년까지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다수의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 있듯,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기반에는 이어령 장관의 각별한 노력이 존재한다. 1991년 12월 30일 열린 당해 마지막 국무회의에 이르기까지 계류 중이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어령 장관은 회의에 참여했던 각 부처 장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예술학교 설립 목적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고, 회의 종료와 함께 반대 의사 없는 극적 타결을 이루어냈다. 그는 예술적 재능 발현에 있어서 골든타임이 있다는 발상을 바탕으로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전문화된 교육기관 설립에 매진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예술교육이 예술가를 양성하는 교육이 아닌 예술 분과의 교육자를 양성하는 교육의 성격이 강한 데에서 비롯되는 시스템의 한계와 부재,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재능이 사장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비전을 정립했다.
개교 3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이어령 장관과 김대진 총장의 대담은 이어령 장관의 별세 한 달 전에 이루어졌다. 이 대담에서 이어령 장관과 김대진 총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비화를 비롯하여 예술과 기술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어령 장관은 예술이 퍼뜨리는 생명력에 대한 믿음과 함께 30년 동안 성장해온 학교의 예술가들이 “이 사회의 산소호흡기”라는 말을 남겼다.